1854년 프랑스 파이에서 '여행가방 전문매장'으로
시작한 프랑스 루이비통은
가방, 의류 주얼리, 신발, 선글라스, 시계 등을
제작, 판매하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창업자 '루이비통'은 1821년 8월 4일에
프랑스 동부 안쉐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적부터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요즘과 달리 그때는 참 어린 나이에 독립을
했나 봅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14세 때 집을 나온
루이비통은 잡일을 전전하며, 파리로 향했고
집을 나온 지 2년 만인 1837년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과거의 패션 중에 현재로선
이해 못할 아이템이 무척 많았지만,
귀족 부인들의 실크 드레스도
엽기적이었답니다.
수십 미터 길이나 되는 실크 드레스는
여행할 때 수십 개의 포플러 나무상자에
담겨 마차로 이동되었는데, 루이비통은
파리로 오는 도중 너도밤나무와
포플러 나무 다루는 기술을 터득했던 지라
그런 여행용 고급 가방을 만드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파리 생 제르맹 부근에서
당시 가장 유명했던 가방 제조 전문가인
무슈 마레샬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한
루이비통은 섬세한 패킹 기술로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짐 꾸리는 사람)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외제니 황후(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의
전담 패커가 되었습니다.
1854년에 이르자
루이비통은 외제니 황후의 강력한 후원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매장이자 포장 전문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 매장에는 '손상되기 쉬운 섬세한 물건들을
안전하게 포장하며, 의류 포장에 전문적임'이라고
쓴 간판이 내 걸려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루이비통 브랜드의 시작이었습니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인한
휴양문화의 발전은 루이비통에게
좋은 기회를 안겨 주었습니다.
당시의 여행용 트렁크들은 여러 개를
쌓기 어려운 둥근 형태였고,
매우 무거워서 공간이 좁은 철도나
배로 실어 나르기 매우 불편했습니다.
자신의 작업장 부근에 최초의
철도선인 '파리 생 제르맹'이 건설되는 것을
지켜본 루이비통은 1858년 평평한 바닥에
사각형 모양의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제작했습니다.
어릴 적 배웠던 목공 일과
패커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캔버스 천에 풀을 먹여 방수 처리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사용해
물건을 적재할 수 있고
무게도 가벼운 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한 것이죠.
트렁크는 황후뿐만 아니라
윈저공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의
저명한 고객들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트렁크의 성공으로 사업의 확장이
필요하게 된 루이비통은
1859년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아니에르에 첫 번째 공방을
개점하였습니다.
이 공방은 아직도 남아 있어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등
유명 인사의 트렁크와
FIFA 월드컵 트로피 트렁크 등
전 세계 고객의 특별 주문을 받아서
상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명품들은 끊임없는 짝퉁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1888년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가
인기를 끌자 모조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루이비통은 모조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다미에 캔버스를 개발해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1892년 창업자 루이비통이 사망하고
아들 조르주 비통이 경영을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다미에 캔버스의 개발에도 모조품이 끊이지 않자
1896년 모노그램 캔버스를 새로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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